아래 링크는 해당 장면에 BGM으로 깔리는 음악입니다. 무슨 곡인지 찾는 데 오래걸렸군요^^
지난 영화, 특히 상영이 종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를 보려고 결정할 때는 평이 좋았어도 관객이 얼마나 들었지? 하는 생각이 우선 스칩니다. 이 영화 <어린 의뢰인>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서 사회고발의 내용이 담긴 작품이라 그런지 '오락'을 기대하고 볼만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관해 큰 이슈가 된 것 같지 않아 감상이 망설여졌습니다. (하루가 48시간이라면 마음껏 이 영화 저 영화를 볼텐데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 대만족입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만큼은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육아법에 극히 공감하셨을테니까요.
이제는 이름도 선명히 뇌리에 박힌 고유정. 전 남편을 토막 살해하고 친아들 살해까지도 의심받는 여자. 인간이 왜 인간입니까. 이성이 있기때문 아닙니까. 중1때 중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보러 간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박사는 그러한 인간다움이 상실된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튼 어린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까지 폭력을 행사한 우리의 유선 씨.(악역 많이 맡으시는 분 아닌데...)의 섬득한 연기력이 인상적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훈계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두 아들의 엉덩이를 숱하게 때렸습니다.(coming out인가요...) 이제는 오그라드는 과정도 이미 지나버린 '잘 잤니? 오늘 숙제를 같이 한 번 해 볼테야? 다 못해도 괜찮단다."라는 말을 건네면 아이들도 마냥 우기지 않고 잘 따라줍니다. 무려 등교 시간 전에 말이죠. 훈계는 납득이 되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이 반영되지 않는 훈계가 되었으면 하네요^^
열 번 안아주고 따뜻한 말 해 준것보다 혼낸 한 번의 기억이 늘 강하게 남습니다.
아침 첫 회 상영이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왔습니다. 입장 전 키아누 리브스와 한 컷!
2편을 이틀 전에 봐서 3편의 첫 장면과 아주 자연스럽게 기억을 더듬을 필요 없이 연결 지어집니다. 엑스커퓨니카도(파멸, 파문)가 시행되기 직전까지 카운트를 본부에서 계속 세고 결국 존 윅은 과연 몇 명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 킬러들에게 사냥감이 됩니다. 중국 킬러, 이탈리아 킬러, 모로코 킬러들까지...
여기서 잠깐, 존 윅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소피아를 찾아 갑니다. 그녀가 매니저로 있는 곳은 모로코의 유명한 관광지 카사블랑카의 콘티넨탈 호텔. 모로코 하면 영화에서 많이 본 두 곳을 언급하려 합니다. 탕헤르 그리고 카사블랑카. 수도는 이 두 곳은 아니고 라바트입니다.
존 윅을 감상할 때는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첫째, 존은 일반인과 신체 능력이 많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둘째,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아주 단순한 논리로 내가 죽이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죽인다)
엄청난 몰입을 하게끔 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 중간 중간에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에이, 저렇게 힘 쓰고 그랬는데 저 많은 사람들과 저렇게 또 싸울 수 있다고?' 혹은 '칼에 살짝 베여도 죽을 것 같던데 저렇게 찔리고 베였는데도 싸울 수 있다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냥 존 윅이기에 꾸역꾸역 버텨낼 수 있다고 인정하면 됩니다. 이왕 즐기러 온 거, 그런 생각으로 돈, 시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요.
매년 엄청나게 쏟아지는 액션 영화들 사이에서 이렇게 '창의력'으로 빚어내는 미장쎈(프랑스 어인데 쉽게 말하면 장면 구성.. 정도로 해석이 가능합니다)을 감상하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영화는 중학생 시절부터 단순히 오락의 수단 이상이었습니다. 주인공의 좋은 성격, 이야기의 독특함, 장면 구성의 신선함. 이런 것들이 제 도전 의식을 자극했습니다. 지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열심히 자기의 길을 걸어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들을 보고 배우기로 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내일 개봉하는 존 윅 3편. 1, 2편을 복습하고 3편에 대한 정보를 IMDb에서 찾아봤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이런 표현 이렇게... 연습해야겠네요.
the third installment. 텝스에서 1회차 할부금으로 출제된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데요. 이렇게 시리즈 중 한 편을 말할 때도 쓰이는군요. 써드 인스톨먼트라...
스킬드 어쌔신- 숙련된 암살자. skillful과 같네요.
가격표 붙어있는 표현 좀 보겠습니다. $14million price tag on his head
excommunication 파멸. 여기서는 이탈리아 어를 쓴 것 같군요.
await his every turn. 다시금 turn의 의미가 참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생소한 명사로 쓰인 의미로는, 장기자랑..이라는 뜻이 있네요. 그런데 이 문장에서 주어는 전 세계의 무자비한(ruthless) 남녀 킬러들이(hit men and women) 그의 턴을 기다린다고 쓰여 있으므로 존 윅의 차례(죽을 차례)를 기다린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수정 글 올려주세요^^
내일 보고 와서 리뷰~~
장애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함부로 그 정도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물론 힘들 것이다. 그로 인해 장애인들에게 연민이 생긴다. 선천적 장애인에게는 ‘날 때부터.....’라는 생각에, 후천적 장애인은 ‘어쩌다 그런 사고를.......’ 이란 생각에 애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다만 그런 생각들을 입밖에 내기는 어렵다. 장애인들은 정작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그로 인해 측은하게 보여질 수도 있는 안타까움과 사랑의 눈길을 그들은 싫어할 수도 있어서 거리에서 마주할 때 도움의 손길을 과감하게 건네기도 망설여진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우리는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서로 공존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들이 정신적, 신체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중들 앞에 섰을 때, 그리고 결의에 찬 메시지를 전달할 때 비장애인들은 엄청난 힘을 얻는다. 그 힘은, 감사함으로, 감동으로, 그리고 이 영화에서처럼 장애의 원인을 제공한 악의 세력(테러리스트)에 맞서는 정의감으로 다양하게 형성된다.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을 거쳐 왔고, 아직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극복해 가고 있는 과정이며 살아있는 긍정의 아이콘이 된다.
그런데 몸이 장기적으로 아프다 보면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 보더라도 여러 번 걸러져서 만들어지는 바람직한 그러한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갖기는 힘들다. 밤이 되어 홀로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끝없는 절망의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도와주려는 손길도 귀찮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영화 속 제프 부먼도 그것을 경험하지 않는 초인은 아니다. 부인도 아닌 여자친구일 뿐인 에린의 (이해하기 힘든) 헌신적인 보살핌을 짜증스럽게 여긴다. 게다가 ‘보스턴의 영웅’이라는 축하와 함께 응원해주는 가족들은 제프가 유명세를 타는 것에 최우선을 두는 듯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손 한 번 흔들어 주며 환호성을 이끌어 내는 것은 동시에 끔찍했던 사고의 현장을 소환하기에 어떻게 보면 제프로서는 손해 보는 장사다. 타인들에게 에너지를 주지만 자신은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해진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 꾸준히 해야 하는 재활은 환호를 보내는 자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지루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과정이다. 생각한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거스르고 움직여 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삶을 연장해 준 신에게 더럽고 치사해서 못해 먹겠다라는 말을 내뱉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여자친구는 서로의 돌봄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 누구 편을 들 것인가.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구토를 한 채로 잠들어 버린 아들을 놔둔 채 TV를 보다가 잠들어버린 어머니에게 인색한 점수를 주려고 할 때, 뜻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어머니도 서서히 진행되는 장애를 겪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두 입술을 앙다물며 제프 스스로 잘 이겨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해진 기간보다 더 일찍.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있다면, 더욱이 나를 죽음에서 구원해 준 존재가 그런 환경에 놓여 있(었)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힘들다고 느껴지는 지금 이순간을 당장에 개선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 무게를 덜어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카를로스라는 남자는 사고 현장에서 제프에게 응급처치를 해 준 의인이다. 재프를 옹졸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닐 듯하다. 카를로스가 만나자는 제안에 나라도 차일피일 미루었을 것이다. 그는 목숨을 구해준 생색을 내고 싶을텐데 내쪽에서는 묵묵부답이니 그가 안절부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영웅 심리와 유명인 자부심에 휩싸인 나로서는 그 영광과 영예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분절될까봐 아까웠겠지. 제프 부먼의 심리는 어쩌면 그렇게 나의 안 좋은 모습과 닮았는지 신기할 뿐이다. .......................
요즘 <극한직업>이라는 영화가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에 한국 영화의 인기몰이를 주도한 것은 바로 이 영화 <말모이>이다. 상영관을 찾지 못해 적절한 관람 시점을 놓쳤다가 이제야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소재나 주제때문에 의식적으로 영어 혹은 외래어를 하나도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ㅎㅎㅎ, 아니 하하하. (원래 쓰려던 말은 '멀티플렉스에서 보려고 했으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제야 다운로드 해서 볼 수 있었다'
일제가 무력 통치로 겁을 주다가 소위 문화 통치를 더해 말을 아예 없애버리려 했다는 것은 중학교 때부터 국사 시간에 배웠다. 나처럼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어도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사고 방식도 어느 정도는 서구화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공부를 하는 중에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영어권의 문화와 제도, 역사에 과도한 애정을 쏟는 것을 조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IT의 발달로 점점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없는 영단어들이 어마어마하게 유입되면서 그 영단어의 의미가 '번역' 작업을 거치지 않고 바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뭐, 지금은 어느 나라 말이 더 낫고 못하다 그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다행이고, 감사하다.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아름다운 한글과 다양한 관념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우리말이 있다라는 것이 감사하다. 언젠가는 우리말이 영어처럼 세계 제1 공용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으면 어떠랴. 미쿡, 유럽인들이 한국어를 많이 몰라준들 어떠랴. 자랑스럽다 한국어가.
그리고........ 한국어 잘 해야 돼 얘들아~~ 경험상 우리말, 우리글을 좋아하게 되면 다른 나라 언어도 그 매력을 쉽게 더 느낄 수 있더라. 오늘 수업 시간에 강조하며 잔소리 할 거리가 생겼다^^
흡인력이 강한 한 편의 긴 보도였습니다. 손가락을 살짝 찔러 나온 한 방울의 피로 200여 개 이상의 질병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신기술을 가진 한 회사가 등장합니다. 여기저기서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 받습니다. 돈을 지원해 준 이들은 당연히 그 신기술을 좀 보여달라고 합니다. 조금 기다리라는데 조금이 아닙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과를 발표합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노심초사입니다. 당뇨 검사할 때보다도 적은 피의 양으로는(찔리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바늘이기에) 홍보한 만큼의 검사의 종류들을 다 해 낼 수 없고, 혈액을 분석하는 기계가 말도 안되게 엉터리여서(물론 수재들이 모여 제작하려고 했지만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기술이었기에) 검사의 오류는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도 전국에 웰니스 센터를 만들어 수 많은 환자들에게 서비스 하려는(팔아 먹으려는) 계획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두둑히 받았으니 환자들에게서 채혈을 해서 의사에게 보내는데 특정 영역의 수치가 너무 높아 정밀 검사를 받게 합니다. 몇몇 의사들은 환자의 나이, 과거 병력 등을 고려해 볼 때 높게 나온 이 회사의 혈액 검사에 의구심이 들어 다른 병원에서 다시 피검사를 받게 합니다. 결과는 정상. 이런 사례가 한 두 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계속 자신들의 신기술을 홍보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며 불안해 하고 염려하는 직원들은 식당 예약 취소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즉석에서 해고해 버립니다. 퇴직한 직원들에게 지속적인 법률적 협박은 늘 이어지구요. 이 회사가 바로 '테라노스(Theranos)'입니다. '치료'라는 의미의 'therapy'와 '진단'을 뜻하는 'diagnosis' 라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만든 회사로서 대학에서 화학공학 두 학기만 듣고 중퇴한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여성이 창업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인 월스트리트 저널리스트인 존 캐리루의 열정과 집념이 아니었다면 대중은 그녀의 매력에, 호소에 계속해서 열광했을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그러한 허술한 기술을 가지고(기술이 애초에 있지도 않았지만) 10여 년간 전, 현직 정치인, 투자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구름 위를 떠다녔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사람들이란 존재는 영화 '향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단으로 무언가에 얼마든지, 언제든지 취할 수 있기에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혈액 분석 기계가 피 한방울로 250개의 검사는 커녕 한 번 채혈하고 한 가지 검사밖에 안 될 뿐더러 그마저도 오류가 많아 독일의 지멘스 회사의 혈액 분석 기계를 다량으로 사 와서 분해해 본 뒤 급기야 그 기계로 혈액 검사를 하는 지경입니다. 실험실 책임자는 자격을 갖추지도 못한 사람일뿐더러 손가락에서 나오는 혈액의 양은 검사를 온전히 하기에 너무 적어 신기술이라던 홍보와는 전혀 다르게 결국 팔에서 피를 뽑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환자들을 검사합니다. 가히 the best of the comedy 입니다. 하지만 미디어가 포장을 하고 꾸며주면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요. 스티브 잡스를 신봉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그의 옷차림을 그대로 따라하며 파란 눈으로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 처리, 원래의 목소리보다 두 옥타브 정도는 내려깔고 말하는 중저음 바리톤 컨셉(유튜브에 보면 실수로 자신의 원래 목소리를 노출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등이 그녀의 정신 세계를 짐작하게 합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소시오패스' 의 개념을 짧게 언급하면서 그녀가 소시오패스인지는 심리학자들에게 판단을 맡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결과 소시오패스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고 이 사회에서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자신의 유명세와 그릇된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이들은 그녀 외에도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변조에 가까운 그 목소리는 참 소름이 돋습니다.
유명세와 윤리 의식, 계속 같이 갈 수는 없을까요.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보니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시각을 자극하며 가슴을 웅웅 울리는 잔향을 남기면 좋은 영화라고 꼽힐 수 있겠습니다. 물론 소리라는 요소도 중요합니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어야겠지만 그 이야기를 눈 앞에 솜씨있게 펼쳐내는 게 좋은 영화 감독입니다.
칸 영화제 수상작들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 한국인들에겐 딱히 좋은 영화인지 의아한 것도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영화로 같이 취급되지만 어벤저스나 미션 임파서블과는 또 '다른 느낌의 좋은' 영화로 구별됩니다. 뭐, 사설이 길었습니다. 어떤 기준을 들먹이더라도 이 '가버나움'은 영상으로 메시지를 잘 전달한 좋은 영화입니다.
레바논이라는 나라를 검색해 봤습니다. 중동지역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성경에도 언급이 되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공간이기도 하고 전쟁중인 것 같기도 해서 궁금하더군요.(중동 지역은 굳이 IS가 아니어도 늘 폭격과 민간인 희생 소식이 자주 들려와서....) 지금은 총알이 빗발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 보면 당연히 레바논 관광 홍보 영상도 보고.....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부모님을 고소한다는 한 아이의 말이 포스터와 예고편에 두드러집니다. 영화는 예고편을 보는 사람과 안 보는 사람, 또 예고편을 봐도 급히 보는 사람과 한번 더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사람들을 나눕니다.^^ 이 영화 예고편을 보기는 했으나 한 번 더 생각은 안했더래서 어느 되바라진 어린이의 정체성 찾기, 정도로만 영화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감상 후에는 아, 만감이 교차합니다. 가족계획이란 1도 없는 부모는 한 아이라도 잘 먹고 잘 자게 해주겠다는 합리화를 하며 열살 갓 넘은 딸을 시집 보내고 열두 살(이라고 추정되는- 출생신고도 안 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어서)된 오빠는 거칠게 막아보지만 어른들의 힘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홧김에 가출을 하고 불법체류 이티오피아 여성과 그녀의 아기를 만나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극빈층, 최하층의 삶은 사실 중동, 아프리카, 남미, 아니 사실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무척 심각하고 보는 내내 불편하죠. 그런데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단순히 국내의 비참한 어린 아이들의 실상뿐 아니라 난민들의 지위에 대한 고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난민 문제는 미세먼지와 경제, 외교 문제 등으로 인해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주요 현안에 포함될 것 같습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라고는 하지만 경제구조가 너무도 아슬아슬하고 양극화가 심한 대한민국이 난민들의 지위까지 신경쓸 수는 없다(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들을 포용해야 하는 이유는.... 살짝 입술을 떼려고만 해도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고 사실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상황이 진행되는지도 관심을 자세히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부담감을 내려 놓고 이러한 문제로 애쓰는 이들에게 가슴으로나마 응원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관심받지 못한 어려운 이들이 알려져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3월 2일 토요일에 CGV에서 감상했습니다. 평점이 높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상영관에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마음이 개봉 당일부터 생겼습니다. 첫 장면부터 눈동자 주변에서 무언가가 살짝 터지듯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바로 익히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의 사진-고아성이 연기한- 장면입니다. 흑백이기에 더더욱 춥고 아파 보였습니다.
'현재의 나는 저 때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가.' 이런 것도 영화가 줄 수 있는 감정 선물이겠지만 그 감사가 환경의 여건을 단순 비교함으로써 오는 것이 아닌, 인과 관계의 자각에서 오는 것이기에 100배는 더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저 분들의 희생 정신. 동포의 십분의 1만이라도 희생한다는 마음만 있어도 독립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유관순 열사와 불굴의 의지로 감옥에서도 만세를 불러 한 맺힌 절규와 염원을 토해 낸 당시의 민초들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낍니다.
영어 선생의 언어,문화 NOTE- 영화 대사의 80퍼센트 이상은 일본어로 이루어진 것 같은데 일본어를 들을때마다 느끼는 점은 발음이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한국 배우들의 발음에서는 자연스러움이 덜 묻어납니다. 좀 더 만화같이, 좀 더 오그라드는 음절 간 연결이 일본어에는 필요한 것 같아요. ㅎㅎ
"반드시 너희 일본은 망하고야 말 것이다."
사과도 없고, 오히려 다시 한 번 군사력 증진을 꾀해 동북아에서 힘을 과시하려 애쓰는 일본 정부가 여전히 기고만장합니다.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뿌린대로 거두리라!)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이론을 그저 읽기 쉽게 다듬어서 자기계발서로 출간한 것 뿐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막상 읽지는 않았습니다. 교만하다고 욕먹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순위로 읽어야 할 책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읽기 시작합니다.^^ 밑줄 치고 요약하면서 읽고 있죠 ㅎㅎ 완독한 뒤에 요약한 것들을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 등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들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사실 학생들에게 그 법칙은 자극이 크게 안 되요. 잘 다듬어서 수업 시간에 소개하고 공유할 생각입니다. 반복하며 강조하는 요지는 분명합니다.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하라. 이 세상에 문제와 나 둘만 남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렇다면 몰입이 되고 해결이 된다.' 천재는 이렇게 몰입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뒤집어 보면 미치도록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면 천재 아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뭐 어찌 되었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고요한 새벽 문제와 나 둘만 남는다'라는 말이 참 와 닿네요. 지금 2장 들어갔으니 어떤 내용들이 또 밑줄 쳐질지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학생들에게 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 방학을 정말 몰입해서 그 동안 집에서 혼자 통제받지 않고 보냈던 시간들을 상쇄시킬 만큼 '몰입'했으면 좋겠네요. 아침 식사도 하기 전인데 어서 학생들이 보고 싶네요. 같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요즘엔 읽는 소설이 스릴러 장르에 치우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지난 주에도 독일 작가 세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을 읽었는데 살인 사건은 이제 좀 멀리 하려는 마음에 동시에 시작한 책이 이 '도리스의 빨간 수첩'입니다. 2차 대전이라는 정말 인류 역사상 엄청난 비극을 젊은 시절에 겪은 한 여인의 회고록이 현재와 과거가 교차 편집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그렇다고 2차 대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은 아닙니다)
도리스라는 96세의 할머니께서 살아 오신 평탄하지 않은 세월 속에는 가족과 연인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습니다. 증손녀 제니에게 남긴 편지가 곧 생애를 반추하는 자서전의 역할을 하는데요 아무리 현실이 나를 비웃는 것 같고 힘들게 하더라도 봄날의 따스한 기운처럼 상처를 어루만지는 도리스 할머니의 속깊은 인생의 교훈을 흠뻑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강렬하게 지면을 뚫고 나온 할머니의 유언으로 맺음을 하겠습니다. 할머니께 많이 배웠습니다. 이 땅의 지혜로운 시니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네 하루하루를 밝힐 만큼의 태양이 내리쬐기를.
그 태양에 감사할 만큼의 비가 내리길.
네 영혼이 강해질 만큼의 기쁨이 있기를.
살면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에
감사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있기를.
때때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만남이 있기를.
November 1919. Two soldiers - a disfigured but brilliant artist and an ex-accountant - start a memorial con. But in the France of the Roaring Twenties, their adventures soon turn dangerous.
*disfigured 흉하게 망가진
*accountant 회계사
*memorial con 기념비 사기(속임수)
*the Roaring Twenties 광란의 20년대
*turn ~하게 되다
Director: Albert Dupontel 감독: 알베르 뒤퐁텔
요즘 읽고 있는 프랑스 소설이다. 작품을 다 읽기 전에 리뷰를 올리면 당연히 비합리적이지만 나중에 추가를 하더라도 몇 자 적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분량은 제법 되지만 문체가 지루하지 않고 심리 묘사도 기발하며 창의적으로 잘 해나가며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독창적인 문장들에 심취해 있는 편인데 같은 프랑스 여류작가 마일리스 케랑갈 정도까지는 아니어도(누가 더 낫다 못하다가 아니다) 메모하고픈 문장들이 꽤 있었다.
다 읽지 않고 리뷰를 써대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작품을 다운받았다는 데 있다. 전쟁 직후인 1919년은 아무래도 내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가 만만치 않은 시대이므로 최대한 쥐어 짜내어 이미지를 그려본다음 영화로 확인하려 한다. 무척 기대된다. 학생들에게도 평소에 독해 지문 하나를 읽더라도 몰입을 해서 특히 일화를 다룬 지문이 나오면 바로 해당 내용을 상상할 수 있도록 스탠바이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상력과 창의력,,,, 영어 공부의 또 다른 효과다.
*decimated planet[데씨메이리드 플래닛]- 대량 학살된, 황폐화된 지구
*avoid coming face to face with an entity (어떤) 존재와 직접 마주치는 것을 피하다
-> avoid는 ~것을 이라는 목적어를 동명사(ing)형태로 쓰는 대표적인 동사
*Hoping to find sanctuary, - 분사구문(분사구로 시작되는 문장)은 원래 접속사+주어로 시작하는 문장을 간단히 줄여 쓰기 위해 접속사+주어를 모두 없애고 남은 동사를 현재분사(수동의 의미일땐 과거분사)로 바꿔 써 주는 용법이다. 콤마(,) 뒤 문장을 해석해보면 '한 여성과 두 아이들이 이동한다(trek)' 라고 쓰여있으므로 'Hoping to find sanctuary,'는 사라진 접속사를 while 정도로 복구시켜 '피난처를 찾기를 희망하면서'로 해석할 수 있다.
*blindfolded 뒷부분은 앞에 이미 주어+동사가 다 나왔으므로 꾸며주는 해석으로 하면 된다. '눈가리개를 한 채로'
*trek- 여행하다
*shield- n.방패 v. 막다
After watching.....
인류가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해 몰살당하다시피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신선도를 보여주는 로튼 토마토 지수가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 이런 설정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샌드라 블럭은 평타 이상을 해주는 여배우이고 이 작품에서도 그녀의 연기는 그 점수 이상은 받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인류 존속 위험의 원인은 바이러스도 아니고 전쟁도 아니다. 너도나도 좀비로 변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형체를 보여주지 않은(하지만 죽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보고, 눈이 뒤집히고, 스스로 죽는다) 존재(entity)를 그 학살범으로 설정한다. 긴장감은 제법 있는편이다. 무전 교신을 받고 쌩츄어리를 찾아 눈을 가린채 보트에 몇일동안 몸을 맡긴 채 강물을 따라간다. 제목 '버드박스'는 악령의 존재를 인식해 지저귀는 소리로 신호를 보내주는 새들을 박스에 넣어 피난 여정에 함께하는데 거기서 따온 것 같다.
두 아이와 힘들 여정을 떠나기 전, 영화 오프닝에서 산드라(극 중 매럴린)는 두 아이에게 강한 어조로 신신당부한다. 그 부분을 수업시간에 계속 따라하도록 연습시켰다. 역시.....학생들은 훈련시키면 된다. 해당 부분을 녹음해서 톡으로 전달했다. 10번 이상 그녀의 표정을 기억하며 따라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는데....열심히 해왔으면 한다. 선생은 늘 잔소리쟁이의 이미지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